(누가복음 15장)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잃었던 나를 다시 얻기 위해 험한 골짜기까지 찾아 다니셨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찾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에만 관심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웃의 형편을 돌아보고 잃은 나의 형제와 자매를 찾는 일에 함께 동참하지 않는다면 한 가족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그 곳을 나도 함께 바라보게 하옵소서.
(누가복음 14장)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예수님의 제자라면 제자다운 모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자다운 모습이란 예수님의 행적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겠지요. 예수께서 가신 그 길은 섬김과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끝까지 가도록 이끈 것은 날 향한 주님의 그침없는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그 좁은 길로 끝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나의 의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를 향한 사랑이 그 길로 나를 이끕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14장)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받을 것을 바라며 베풀지 않겠습니다. 받은 만큼 하늘의 상이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베푸실 잔치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하늘창고에 보화를 쌓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누가복음 12장) 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지고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행한 것들에 따라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시어 주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하나님은 언제든 우리의 영혼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득찬 창고가 마음에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 것은 또 다른 걱정과 근심을 낳기 때문입니다. 하늘 창고에 넉넉히 보물을 쌓아감으로 언제나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사탄은 이 땅의 삶에만 집중하게 합니다. 그의 마지막 무기는 죽음이고 그 이상의 힘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 속에 계셔 우리의 영원한 삶에 대해 권세를 가지십니다. 마땅히 내가 두려워 할 대상은 하나님임을 기억합니다.
(누가복음 10장)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는 예수를 대접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저 예수 앞에서 그의 말씀을 듣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위해 여러가지 일로 바쁜 마르다보다 그저 그의 앞에 머물며 그의 말씀을 조용히 듣던 마리아를 칭찬합니다. 마르다와 같이 늘 바쁘고 분주한 나의 일상을 돌아 봅니다. 다 무엇을 위한 바쁨과 분주함 이었을까요. 하나님이 내게 진짜로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 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누가복음 9장)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는 장차 있을 당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지만 제자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누가 더 큰자인지를 다툽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듣고 말하기 보다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일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누가복음 9장)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영광 가운데서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기대와 희망은 죽음 앞에서 모두 무너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임합니다. 세상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지만 주를 믿는 우리에겐 영광에 이르는 통로가 됩니다. 주와 합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고난과 죽음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유일한 길임을 믿는 까닭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를 따르는 길이란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를 위한 생각과 행동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내가 대신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나의 십자가를 대신 감당해 주셨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마음속에 새기며 오늘 하루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겠습니다.
(누가복음 9장)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빈들에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작은 것을 가지고 나누라 명하셨고 제자들은 이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바구니나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의 작은 지혜와 경험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눅8:10 좋은 땅만이 아니라 길가에도 바위에도 가시떨기에도 말씀의 씨앗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모두 같이 열매맺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결실을 거두십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고 인내하는 좋은 마음으로 날 가꾸시고 백배의 결실을 맺는 땅이 되게 하소서.
(누가복음 7장)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어두웠던 눈을 밝히시고 닫혔던 귀를 열어 주십니다. 병을 낫게 하시고 모든 억눌림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주가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통해 마지막 날에 완성되어질 당신의 나라를 꿈꾸며 소망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나라가 속히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7장)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한 과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보이지도 않았고 예수께 구하지도 않았지만 주님은 그 과부를 위로하시고 자식을 살려 주었습니다. 이유도 없고 그침도 없는 주님의 그 크신 긍휼과 은혜로 보잘 것 없는 내가 오늘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6장)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5:29~30 예수님은 병들고 약한 자들을 고치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고 마셨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봅니다. 주의 긍휼로 내가 나음을 얻으며 주의 사랑으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누가복음 5장)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중풍병자는 예수께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자 지붕을 통해 천장을 뚫고라도 예수께 나아가 나음을 얻습니다. 믿음은 고상한 격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 사이의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선택과 행동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픔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수께 나아가고 그에게 구하면 고침과 나음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