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끼리도 복음에 대하여 말씀에 대하여 나눌 때 복음 비슷한 것들 까지는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는데 복음 가까운 곳까지는 대화가 통화는 듯 하다가도 복음의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 우리의 수치스런 죄악과 무력감과 가치없음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다함없는 영광과 은혜를 드러내는 자리로 들어갈 때면 내가 믿고 따르던 믿음의 선배들이나 믿음의 동역자들이나 모두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내가 틀린건지 그들이 틀린건지 이 역시 그저 자만하지 않게 하시는 주의 은혜라고 봐야하는 건지 그럼 나는 또 혼자임을 느낀다 그들은 그렇게 날 또 외로운 골방으로 들어가게 한다 홀로 외로이 말씀 안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의 복음을 다시금 점검하게 한다 도대체 그 누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 누가..
내 삶을 이끄는 분 내 인생을 지키기는 분 내게 평강 주시는 이 나의 아버지 나의 구원자 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이 정도의 이미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이런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이런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오해요 무지가 될 수 있기에 염려스럽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바라보는데 가장 균형잡힌시각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관점은 창세기1:1의 그림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창세기 1:1에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창조주로 소개한다. 창조주의 그림으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어 진짜는 본질이고 주체이며 가짜는 현상이고 객체이지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만들어내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어 예를 들면 지구공전과 계절같은거야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계절은 눈에 보이지만 그건 실체가 아니야 지구공전에 의한 현상일 뿐 과학자들은 현상들을 관찰해서 자연의 본질을 밝혀내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자연의 본질을 밝혀나가다 보면 결국에는 하나의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그럼 이 자연의 본질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느냐는거지 결국 그 실체가 자연의 본질을 만들어내고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는거야 하지만 인간은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어 그 답은 자연 밖에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 자연 밖의 실체를 아는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은 인..
믿음이란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그런 자가 아니고 그런 자가 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그런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안됨을 알기에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만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면목없이 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날 향한 그 사랑을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임이 증명되었고 보장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TistoryM..
믿음이란 하나님만으로 충분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자가 아니고 그런 자가 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아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다가 그런 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이 하신 일임을 정확하게 아는 자이다. 나는 아니기에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만을 구하는 자이다.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면목없이 구하는자이다. 날 향한 그 사랑을 알기에 뻔뻔하게 구할 수 있는 자이다. 구하면 주시는 분임을 알기에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는 자이다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TistoryM에서 작성됨
성경에서 말하는 선행이란 무엇일까요 또 의란 무엇일까요 선과 의가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악이고 죄이고 불의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떠나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불순종의 태도가 바로 죄의 본질이라고 지난 시간에 함께 배웠습니다. 주님의 말씀데로 되는 것이 선(토브)이라고 이야기 드렸었죠 결국 죄의 자리에서 떠나(회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안으로 들어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이요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입니다 그리스도만 진리입니다 그를 믿고 의지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행할 수 있는 선한 행위다. 이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사는게 쉽습니까 죽는게 쉽습니까 혹시 여러분 지금 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까 지금 숨쉬기 힘든 분 있나요 지금 심장을 애써 뛰게 하시는 분 있나요 그냥 숨쉬어 지고 있지 않나요 심장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뛰고 있지 않나요 내가 살고 싶어 사는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는 거 모르시겠나요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계속 살리시고 있으시다는 것 모르시겠나요 못 느끼고 계시나요 이렇게 살아있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인가요 하루하루 살게하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우리가 의지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죽는 것 뿐인 걸 아직 모르시겠나요 죽으세요 좀 그리스도께서 열정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 같이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음의 길을 가주세요. 내 밥그릇의 밥을 덜어서 옆사람..
나는 티비를 보지 않는다. 솔직히 게을러서 말씀읽을 시간도 엄는데.. 티비볼 시간이 있나..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말씀을 붙잡고자 한다. 내 안에 말씀의 은혜가 없으면 하루하루가 생지옥같기 때문이다. 더 슬픈 것은.. 이런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며 공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안에서 조차 말이다. 도대체 말씀은 머고 복음은 머고 십자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라고 믿는다면 바울과 같은 삶은 모델이 아니라 베이직이 아닌가 바울과 같이 살아내지 못하면서 무슨 그리 할말이 많은가.. 말씀데로 살아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남은 일이 회개할 것 말고 머가 더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 바울은 복음을 위해 택함 받은 그리스도의 종 2. 성경에 미리 약속된 예수그리스도 3. 다윗의 혈통에서 나심, 성령으로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심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자기소개와 문안인사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1. 너희가 복음들은 것에 감사 2. 믿음, 성도간사랑, 하늘의 소망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
사도행전 17:24~31 에 나타난 바울의 설교 당시 아테네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들의 중심지 였습니다. 에피쿠로스 및 스토아철학등이 유행하며 전해지고 있었고 많은 종교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신당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지만 알고 싶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그 신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때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하나님이 사도행전17:24~31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신의 존재는 믿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지만 알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2천년전에 바울이 전했던 그 하나님을 다시 전하고 싶습니다. 1. 그 분은 우주와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 2. 그러므로 사람이 지은..
*본문: 막9:33~37 1. 내용요약: 서로누가 더 크냐 쟁론하던 제자들을 앉혀놓고 첫째되고자 하면 끝이 됨과 모든 이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심.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심. 2. 하나님찾기: 늘 우리의 생각을 뒤집으시는 반전의 하나님. 낮은자의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3. 강조점: 낮아질 때에 더욱 높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삶속에서 작은자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모습으로 나타나야하는 것. 4. 적용: 작고 미천한 자들일수록 더욱 주께 하듯 할 것, 지극히 작은 일에도 주의 일처럼 충성할 것.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예수의 탄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탁월한 선교방법 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란 해외에 나가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더 넓고 단순하게 볼때 선교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해외선교, 전도, 양육, 제자훈련, 성경공부, 주일학교와 같은 사역은 모두 선교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선교하신다. 그 중에 단연코 최고의 선교전략은 바로 성육신한 예수라 할 수 있다. 성육신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피조세계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셨다. 그럼으로 인간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단 예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렸지만 그들과 같지는 않았다. 예수는 그들을 죽기..
하나님의 사람은 곧 예수님같은 사람이고 지혜롭고 매력적이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하는 그런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렇게 만드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날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모습을 추구하는 것 마저.. 나의 욕심이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용해서 또 다른 나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려는 욕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실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지혜롭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날마다 죄 가운데 빠져 지낼 수 있다. 부끄럽지만 나를 보니 딱 그렇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진정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 이게 다는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간절하..
나 자신에 대해 너무나 실망했다 나의 만족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하는것이 맞지만.. 그래도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만족할 순 없을까. 그럼 안되나. 도대체 나는 그럼 누구인가.. 하나님이 친히 지은 자녀인데.. 그리스도가 피값주고 건진 영혼인데.. 나는 왜 스스로 이렇게 실망스러워 하고 있는걸까.. 조금은 삐뚫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의욕상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나..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에세서 소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문제에 부딪힐 때 소망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것이 진실로 신자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쓰나 그럴 순 없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게.. 소망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믿음이 없는건가.. 먼가 이게~~ 먼가 이게~~ 오늘 아침 어..
또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무언가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준비했다면 쪼금 더 죠았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지만..지금이라도 괜찮다나에게 하루하루는 늘 이런식이었다..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현실속에는..그러나 괜찮다..현실이란 원래 늘 그랬다어쩌면 그건 죄로 인해 깨어진 차가운 세상속에 던져진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지도 모른다하지만괜찮을 수 있는 이유는그런 내 안에 생명의 빛이 오셨기 때문이다.엉뚱한 감정들로 소중한 하루하루를 놓지지 말자날마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다다시 말씀을 붙잡고 하루를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자지나간 과거는 언제나 그렇게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다 말씀은 내게 언..
내 마음안의 차가운 판단과 이기적인 마음과 믿음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실체를 낫낫히 아시는 주여 어쩔 수 없었다느니.. 나도 할만큼 했다느니 하는 핑계들이 얼마나 우스운 것들인지요.. 주의 거룩하심 앞에서 구할 것은 오직 주의 자비와 긍휼뿐임을 고백합니다. 날 살리시는 건 온전히 주의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내가 사는 것 자체가 주의 크신 자비의 증거입니다. 끝까지 기다려주시는 인내하심의 증거입니다. 주의 선하심과 그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